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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여 농산물 도매시장

십 년도 훨씬 전 어느 날 오전에 아버지께서 자전거 뒷 짐칸에 채소를 잔뜩 싣고 집에 오신 적이 있었다. 반여 농산물 도매시장이 가격이 저렴하다고 해서 다녀오신 것이었다. 그때는 반여 농산물 도매시장이 어디쯤에 있는지 잘 모르고 대략적인 위치만 어렴풋이 짐작했었다.

시간이 지나 아버지를 보내드리고 아버지가 계신 정관을 다녀올 때면 늘 1010번 버스를 타곤 한다. 버스가 고속도로를 타고 터널을 2개 통과해서 석대 화훼단지로 접어들면 반여 농산물 도매시장이 보이기 시작한다. 차창 밖으로 시장 입구가 보이고 건널목이 보이고 수영강을 가로지르는 동천교가 보일 때면 아버지가 정성스레 칠한 은색 자전거를 타고 시장으로 가시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럴 리가 없지만 괜히 지나가는 자전거라도 있으면 아버지신가 한 번 더 눈길이 간다. 집으로 오는 길에 자전거로 오르기 힘든 가파른 언덕길이 있는데 어떻게 올라가셨을까, 내려서 힘들게 끌고 올라가셨겠지. 언덕을 넘어 정수장을 지나고 충렬사를 지나서 집까지 차로도 수십 분이 걸리는 길이 얼마나 힘드셨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매번 이런저런 생각 속에 그렇게 아버지와 교감하는 순간은 짧지만 내 마음속에는 아버지가 자전거를 타고 가시는 모습이 점점 더 선명하게 새겨진다.

2021년 5월 16일, 00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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