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올레 비비에스

이것이 인생이야

어느 늦은 가을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강원도 봉포항 근처 펜션에서 오브들 네트워크 정기모임을 가진 적이 있었는데 차가운 소맥과 어우러진 짙푸른 밤바다의 파도 소리에 취한 한 회원분이 자기만의 인생론을 횡설수설 말씀하시었는데 꼬인 발음 속에서도 그 논리가 명확하였기에 기록으로 남겨두었다. 

나는 남자지만 여자들이 참 불쌍해. 우리나라 여자들보다 중동 국가에서 태어난 여자들이 더 불쌍해. 그 여자들은 사회적 억압으로 한평생 자기만의 꿈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아야 하잖아. 그리고, 나는 조선시대 때 태어나지 않아서 행운이라고 생각해. 양반은 못 될 팔자라 종살이나 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내가 가오가 있지. 그리고, 임진왜란 때 태어나지 않아서 감사해. 한국전쟁 때 태어나지 않아서 감사하고. 전쟁은 비참한 거야. 일제시대 때 태어나지 않은 것도 다행이야. 내가 독립운동이나 할 위인은 안 될 터이고 일본놈들 앞잡이가 되었을지도 모르잖아. 사람 앞날은 모르는 거거든. 그리고, 나는 사람들이 재벌 2세들 욕하는 거 솔직히 이해하기 힘들어. 뭐 재벌 2세들 중에도 문제 있는 경우가 더러 있지만, 일반적인 재벌 2세들이 잘 사는 게 뭐 그리 대수인가 싶거든. 걔들이 재벌 2세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게 아니야. 태어나 보니 재벌집 아들내미 딸내미인 거지. 있는 집안 사람들이 형편대로 누리고 사는데 뭐 그리 배알이 뒤틀려서 구시렁 들대. 그런 심보로는 부자는 못되고 평생 남 뒷다마나 까다가 가는 거야. 그런 면상들이 태어나는 거 선택할 수 있다면 당장 재벌 2세로 태어나려고 할걸. 요즘 말로 백퍼야 백퍼. 껄껄. 나는 지금 시대에 태어난 걸 감사해. 나름 선진국에 평화로운 시대에 태어나서 별달리 잘나지도 못했지만 그럭저럭 밥 먹고 하고 싶은 거 하고 살거든. 회원님, 사람의 인생은 태어날 때 거의 결정된다고 봐야 돼. 어느 시대 어느 국가에 태어나느냐도 운이고, 어느 부모님에게서 태어나느냐도 운이고. 전혀 자신의 능력이나 스스로의 결정과는 무관한 이 운이라는 것이 인생의 향방을 결정하는 절대적인 요소야. 거의 80% 이상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한 이 운이라는 것이 결정하는 거거든. 나머지 20% 정도가 타고난 재능과 스스로의 노력이고. 이 얼마 안 되는 가능성마저도 신분 상승이 가능한 시대에 민주주의 국가에서 태어나야 비벼볼 수 있는 거고. 참 희한하지. 이것이 인생이야.

2020년 5월 16일, 17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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